증권시장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4월 9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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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flickr(https://www.flickr.com)

KDI 경제정보센터

주식시장에서는 말 그대로 주식이 거래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숫자뿐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주식이라는 증권이 거래되는 것이고, 증권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바로 기업의 가치다.


기업에겐 자금조달, 개인에겐 투자수단

기업은 회사를 설립할 때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조달 가능하다. 첫 번째는 남의 돈을 빌려오는 것이다. 이것을 부채라 하는데 부채는 만기가 되기 전에는 이자를 지급하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을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회사 주인이 돈을 내는 것이다. 이를 자본금이라 하는데 이 돈은 회사가 존속하는 한 돌려줄 필요가 없는 돈이고 회사에 이익이 있을 경우 이익배당을 준다. 이때 주식은 회사 주인들이 자본금을 출자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서를 말한다. 주식은 회사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주식회사만이 발행할 수 있다.


주식을 보유한 회사의 주인들을 주주라 한다. 주주는 그 회사가 영업을 잘해서 많은 돈을 벌면 배당금을 많이 받아가지만 돈을 벌지 못하면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이 출자한 회사가 계속해서 돈을 많이 벌어들이면 주주들은 한번 출자한 이후 계속 많은 배당을 받게 되고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주식을 갖고 싶어 할 테니 그 회사의 주가는 점차 상승한다. 반대로 증권시장 회사가 돈을 못 벌어들이면 배당을 받을 수 없고 그런 주식은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아 주가는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기업이 영업을 잘하는 즉, 기업 가치가 우수한 주식의 가격은 올라가지만 기업 가치가 나쁜주식의 가격은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주식시장은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알수 있는 곳이고, 그 기업의 가치가 거래되는 시장인 것이다.


주식시장은 우리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돈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높은 수익률에 단기로 빌려주기를 원한다. 반대로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낮은 이자율에 장기로 빌리고 싶어 한다.


이렇게 되면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어려워지지만 주식은 주주들에게 배당을 받을 권리, 새로운 주식을 받을 권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권리 등을 보장해줌으로써 많은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조달해 큰 자금을 만들어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사는 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둘째, 투자자들에게 투자 수단을 제공한다. 증권시장이 잘 발달돼 있고 또 경제상황이 좋으면 투자자들은 주식에 투자해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면 손실을 볼 수도 있다.


발행시장과 유통시장

주식에 투자하는 방법은 크게 증권시장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회사가 발행하는 주식을 회사로부터 직접 매입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공모주 투자라고 하는데 기업이 기업공개를 하는 경우나 증자를 할 때 공모에 응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시장을 주식의 발행시장이라 한다. 두 번째는 증권거래소시장에서 주문을 통해 주식을 거래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시장을 주식의 유통시장이라 한다. 우리가 흔히 주식시장이라 하면 증권거래소시장인 유통시장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증권거래소는 한국거래소(Korea Exchange,KRX)다. 한국거래소는 주식시장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으로 나누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매출이나 이익규모도 큰 우량한 기업들의 주식이 거래되는 반면, 코스닥시장에서는 신생 기업이나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성장형 기업의 주식들이 거래된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은 모두 증권거래소시장으로, 여기서 거래되는 기업을 상장기업이라 한다. 상장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하므로 이들은 나름대로 믿을 수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은 유가증권시장에 비해 고위험·고수익의 주식들이 거래되므로 기업의 내용을 잘 따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거래소에서 주식을 거래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프리보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프리보드 시장은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 상장되지 못하는 기업에게 자금조달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장외시장이다. 이곳은 실속도 있고 가능성도 있지만 주식시장에서 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벤처 기업들을 위한 증권시장이라 할수 있다.


경제상황을 보는 창, 주가지수

주식시장은 한 나라의 경제상황을 적절히 판단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한 나라의 경제가 호황인지 불황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찾아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지표는 바로 그 나라의 주가지수다. 즉, 주가지수가 높거나 상승하고 있으면 경제가 호황이며, 반대로 낮은 수준이거나 떨어지고 있으면 불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기업들이 열심히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자들은 그 물건을 원활히 소비해주고 있다는 의미다. 즉, 기업들은 자신의 물건을 소비자들이 잘 사주고 있기 때문에 매출이 늘어나 돈을 잘 벌게 된다. 또 기업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투자를 늘리고 사람들을 고용해서 월급을 주기 때문에 가계 구성원들도 취직이 잘되고 또 돈벌이도 잘되어 그돈으로 더 많은 소비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경제가 잘 안돌아가면 기업들이 물건을 만들어도 소비해 줄 소비자들의 구매능력이 부족해서 물건이 잘 팔리지 않고, 결국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또 직원들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에 증권시장 따라 가계의 구성원들은 실직하거나 월급을 보다 적게 받을 수밖에 없어 생산과 소비가 모두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현상들이 모두 주식의 가격 즉, 주가에 반영된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제가 호황인지 불황인지는 주가지수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한 나라의 사회적 자본이 형성될 수 있도록 돕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주식시장의 발전은 기업과 가계의 생산과 소비를 원활히 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늘 주식시장의 동향을 살펴 우리 경제가 건실한 상태인지, 부진한 상태인지를 지켜 볼 필요가 필요가 있다.

사회

주식시장 : 개장에서 전면개방까지, 선진국 대열에 오르다

여의도 한국거래소,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뉴욕 금융박물관에는 황소와 곰상이 있다. 이 밖에도 뉴욕 맨하탄 월가(Wall street)와 홍콩 증권거래소에는 황소상이 있다. 증권과 관련된 곳에 황소와 곰이 있는 이유는 주식시장 용어와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가장 높았던 때에 비해서 20%이상 떨어지게 되면 ‘베어마켓(Bear market)’에 진입했다고 하는데, 베어마켓은 주가가 떨어지는 하락장, 약세장을 뜻한다. 반대로 주가가 상승장세 일 때는 ‘불마켓(Bull market)’이라 한다. 많은 동물 중에 하필 곰이 주식시장 하락세를 의미하게 된 이유는 움직임이 둔한 곰의 이미지처럼 거래가 부진한 시장이라고 해서 생겼다는 말도 있고, 싸울 때 상대를 찍어 내리는 곰의 모습을 본 따 생겼다는 말도 있다. 또 예전 서양에서 성행했던 곰 가죽 시장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당시 곰가죽을 팔던 거래상 중 일부가 가죽의 가격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사냥한 곰이 없는 상태에서 미리 가죽을 예약 판매했다. 이것은 일종의 공매도(空賣渡)라 할 수 있는데, '없는 것을 판다'는 뜻으로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란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즉, 미리 곰가죽을 예약판매하고 시중에서 가격이 떨어지기를 바란 거래상들의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베어마켓’과 상반되는 ‘불마켓’에서 불(bull)은 황소를 뜻한다. 황소의 두 뿔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뿔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데, 사람들은 주식시장이 황소 뿔처럼 위로 솟아오르는 상승장을 기대하면서 불마켓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한국증권거래소 개소식(1963) 제3회 증권의 날 기념식(1971) 여의도 증권시장(1984)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의 현대적인 주식시장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론 그 전에 주식과 관련된 거래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거래소시장은 「조선취인소령」에 의해 1932년 1월 설립된 주식회사 조선취인소(朝鮮取引所)였다. 「조선취인소령」에는 유가증권의 거래방법, 시장시세 결정방법, 허위매매 금지 등의 사항이 규정되어 있었다. 조선취인소가 우리나라 최초의 거래소시장이지만, 일제강점기의 주식자본은 거의 일본인이 독점하였기 때문에 이를 우리나라 공식적인 주식의 유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1951년 부산피란 당시 4개의 주식회사가 있었는데, 이들의 거래대상도 농지개혁의 보상으로 교부된 지가증권과 전시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발행된 건국국채를 매매하는 데 그쳤다.

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을 위한 투자재원 조달을 위해 1953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업협회에서 주식시장의 개설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윤인상 재무부차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설립준비위원회는 1956년 2월 11일 서울 명동에 대한증권거래소를 설립하였고, 한 달 후인 3월에 공식 출범하였다. 조흥은행, 저축은행, 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은행 4곳과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6개 일반기업, 대한증권거래소, 한국연합증권금융 등 12개 종목이 이때 상장했다. 시가총액은 150억 원 수준이었다. 현재 전산 처리되고 있는 증권매매 방식이 당시에는 증권사를 대신해 나온 직원이 거래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상대방이 의사가 있을 경우 수량과 가격을 손과 소리 등으로 표시해 거래를 체결하는 방식이었다. 이들 주식의 대부분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어 일반 투자자들의 주식 거래는 미미했으며, 개장 첫해 주식거래 실적은 3억 9,000만 원에 불과했다.

[대한뉴스 제77호] 대한증권 거래소 개소

[대한뉴스 제77호] 대한증권 거래소 개소(1956)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면서 우선 투자재원의 조달책으로 주식시장을 통한 내자동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1962년 1월 처음으로 「증권거래법」을 제정하고, 이 법에 따라 대한증권거래소가 1962년 4월 개소되었다. 그러나 개소 한 달 후 주식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고 여기에 거물급 투기 세력의 책동이 곁들여지면서 주가폭등과 과열양상이 발생했다. 그러다 월말에 결제하기로 약속한 매수자가 결제를 증권시장 못하면서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증권거래소와 증권금용회사는 빚더미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살 하는 일반투자자들이 발생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는데 이것이 1962년 일어난 ‘5월 주식파동’이다. 이 일로 주식시장은 한동안 침체되었고 1967년의 주식거래량은 1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1963년 5월 증권거래소를 주식회사 형태에서 공영제로 변경하여 주식거래의 공정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이 유통과 발행 양쪽에서 현대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72년 12월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된 이후였다. 기업의 공개를 촉진하여 기업의 원활한 자본조달과 재무구조의 개선을 도모하고, 국민의 기업참여를 조성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기업공개촉진법」 에 따라 상장사도 늘어났으며, 근대적 주식시장의 육성에 크게 기여했다. 1981년 3월 증권협회가 주도 하에 증권전산업무개발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주식 전산화 단계에 진입하였다. 주식전산화는 주식유통시장의 기본 업무를 표준화하고 주식분석기법의 발전과 투자자의 투자기법을 개선하였다. 이렇게 주식전산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1983년 1월 4일 시가총액방식의 종합주가지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100포인트로 시작한 코스피 지수는 경제성장이 고도화되던 1980년대 후반에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1987년 500포인트를 돌파했으며, 1989년 3월 1,003.31포인트가 되어 1,000포인트 시대를 열게 됐다. 1990년대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화와 발맞춰 주식시장도 질적인 성장을 이어갔는데, 1992년 외국인의 국내증시 직접투자가 허용되면서 본격적인 개방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96년 코스닥 시장이 정식 설립됐으며, 선물시장이 연이어 개설되면서 증시의 선진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97년 IMF사태를 맞으면서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1998년 5월 25일부터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일반 상장법인 및 KOSDAQ 등록법인에 대한 전체 및 1인당 외국인 투자한도가 폐지되었다. 외국인 보유비중은 2016년 31.9%까지 늘었다.

주식시장 개방 추진방안

주식시장 개방 추진방안(1991)

2000년대 들어서 주식시장은 제 모습을 갖춰 나갔는데, 2002년 1월 28일 개별주식옵션시장 개설을 시작으로 환매조건부 채권매매(REPO)시장,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등이 모두 문을 열었다. 2005년 1월 27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창립됐으며, 같은 해 11월과 12월 스타지수선물시장, 주식워런트증권시장이 개설됐다. 2007년 7월 2,000포인트를 돌파하는 저력을 뽐내기도 했으나, 2008년 ‘리먼 사태’로 국내 주식시장은 큰 고통을 겪었다. 투자은행(IB)인 리먼 브라더스가 9월 15일 파산하면서 전 세계의 기관과 개인들로부터 차입한 금액을 갚지 못했는데, 이로서 동반 부실이라는 도미노 현상을 몰고 왔다. 이후 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2009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현재의 한국거래소로 이름을 변경했다.

2009년 9월 FTSE(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index)증권시장 선진지수에 편입되면서 우리의 주식시장은 선진시장 반열에 올라섰다. FTSE선진지수는 영국의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스와 런던증권거래소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지수로, 우리나라가 FTSE선진지수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증권시장 주식의 수준이 신흥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 금융의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신뢰도가 높아지면 외국투자자들의 자금수급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의 주식시장으로서는 좋은 소식이었다.

우리의 주식시장 상장기업수는 1973년 100개, 1997년 1,000개를 넘어섰으며, 2016년 총 2,000개의 상장사가 주식시장에서 거래 중이다. 시가총액의 경우 1965년 150억 원에서 2016년 1월말 기준으로 1,207조 4,58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 13위 수준이다. 거래대금은 개장 초기 3,100만 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 약 4조7,700억 원대까지 늘었다. 일평균 거래량 역시 14만 3,000주에서 3억 6,507만 주까지 껑충 뛰었다. 이 수치는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의 주식시장이지만, 빠른 성장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발전상은?
(2018년 02월 기사)

안녕하세요? 저번 시간에 다루었던 내용인 해방 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모습과 58년 국채파동 이야기, 재미있으셨는지요. 이제 오늘은 1960년대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가장 격동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부정선거로 인해 촉발된 4.19 혁명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윤보선-장면이 이끄는 민주당 내각이 출범합니다. 하지만 곧 정치적 분열과 혼란이 계속되면서 군사정권이 출범하게 됩니다.

1950년대 역시 증권시장에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대한증권거래소가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증권업자들이 대한증권거래소 주식을 매점하려는 시도로 촉발된 증권파동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대한증권거래소의 상장을 두고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이후 대한증권거래소 주식에 대한 수도결제 거부가 이뤄지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격동과 소요가 많았던 시기기도 합니다.

주식이 대세를 형성하다

앞서 1950년대에서 증권이 곧 채권으로 통하는 것이 상식이었다면 1960년대에는 조금씩 주식이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소위 '명동시대'로 통하던 거래소에서 초기 상장된 기업은 12개 종목입니다. 조흥은행, 상업은행, 저축은행, 흥업은행,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대한증권거래소, 한국연합증권 등 총 12개가 초기 거래 대상 종목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https://www.flickr.com)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장된 기업은 조흥은행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은행이라고 하면 다들 '조상제한서(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를 떠올릴 정도였지요. 그중 맏형이었던 조흥은행은 가장 큰 세력을 자랑했지만, 1997년 IMF의 거센 파고를 버티지 못하고 신한은행에 합병되었습니다. 실제로 위의 주식회사 중 경성방직(경방), 경성전기(한전) 등은 현재도 남아있으나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https://www.flickr.com)

초기의 기업 상장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편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정부에 기업들을 뺏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인들이 많아 초기 상장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실제로 거래종목의 증가율은 저조했습니다. 1963년에도 고작 15개 정도가 거래 가능했지요.

1970년대 증권 거래의 모습은?

그렇다면 1960년대 증권거래 방식은 어떠했을까요? 우선, 증권거래소 곳곳에 설치된 매매대에서 호가표에 매매 수량과 금액을 적어내면, 체결된 거래 정보는 중앙게시판에 있는 직원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면 중앙게시판에 있는 직원이 이를 분필로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이런 방식 때문에 거래가 1시간 이상 지체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는 1979년 2월 전산시스템이 거래소에 도입되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사진 출처: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박정희 정부 이후 경제계획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고 경제 성장과 함께 정부의 증시 독려책이 효과를 내면서부터 조금씩 기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1968년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 기업들의 상장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1968년 기업의 수는 34개, 이후 1970년대에는 세 자리 수가 넘는 기업들이 거래소에 상장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0년, 우리나라 증시는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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